카페 꽃길

하는 거라곤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얘기하는 것 밖에 없는 나라서, 은근히 카페를 여러군데 가게 된다. 지금, 최근 다녀온 카페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면 처음은 꼭 꽃길을 써야지 했다.

꽃길은 정말 그냥 꽃길이다.

단어에서 연상할 수 있는 느낌 그대로 만든 카페다.
카페는 입구부터 입구 옆 짜투리 공간까지 그대로 두지 않고 꽃과 테이블로 꾸며져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카페까지 그대로 꽃길이다. 내부에는 장식이며 파티션도 전부 꽃이고, 식물이다.
가끔 길을 가다 볼 수 있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이 운영하며 일단은 꽃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은 그런 인테리어가 아니라 모든 꽃들이 ‘오늘 분명히 새로 만졌다’는 느낌이 들만큼 생기가 있다.

집이 없어서 서러운 건 어른이 되었다는 것 같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책임져야할 것이 있다는 거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서러운 어른이라 매 년, 일 년에 한 번씩 월세살이 둥지를 바꾸는데, 10년 째 경기도 이천에서의 올 해 선택은 ‘신둔면’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는 공간 혹은 장소고 그 중 가장 자주 가게되는 장소가 카페다. 신둔면에 이사와서 가장 먼저 찾았던 카페가 꽃길이었다.

실내는 물론 테라스까지, 여기는 찐이다.

날씨가 좋은 날 활짝 열린 꽃길의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책을 보면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기분이 참 좋다. 매번 올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바뀌어 있거나 달라져있는 식물들을 찾아보고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처음엔 많은 식물의 규모에 놀라고, 몇 번 방문하면 이걸 관리하는 사장님이 진심이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단호하게 얘기하면 커피는 우리 취향은 아니다.

왜냐면 나는 커피를 하루에 네 잔 씩 마시지만 맛을 잘 알지는 못하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단순히 산미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외 모든 음료는 우리 취향이다. 꽃과 인테리어에 진심인 사장님은 음료에도 진심이다. 주문할때 메뉴 특징도 알려주시고 추천도 정성껏 해주신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과일차를 미리 맛보라며 주시기도 한다. 직접 구워주시는 커피콩 빵은 매우 맛있고 스무디나 에이드는 매우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항상 친절하시다. 항상 유니폼을 입고 일하시고 모든 손님에게 친절하시다. 특히 사장님 모자가 매우 귀엽다.

며칠동안 매우 아파서 고생을 좀 했다.

단순한 감기인데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증상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큰 통증으로 발생해서 며칠씩 고생을 좀 했다. 아까운 연차는 누워서 자느라 다 보내고 이 약을 먹어야 하나, 저 병원을 가봐야 하나 고민하는 게, 평생 살아오면서 약을 사먹어 본 적도, 병원에 가본 적도 없는 나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이 통증도 잦아져가긴 하는구나 싶어질때 너무 누워서 거동 못하는 노인환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 여자친구에게 산책 겸 커피를 마시러 나가자고 했고 오랜만에 꽃길에 왔다. 음료만 사서 가려고 나오는 길에 입구 옆 테이블에 잠시 앉아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데 여자친구가 갑자기 이 순간이 너무 감격적이라고 했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지겨울 정도로 늘상 함께했던 이런 일상일 뿐인데 너무 오랜만이었나 보다. 아무렇지 않게 아프지 않은 표정으로 카페에 걸어와서 커피 마시고 얘기하고 바람을 쐬는 게 새삼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픈 동안 옆에서 걱정하고 마음 고생했을걸 생각하니 다시 아프면 안 되는 몸이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근데 꽃길도 단점이 있다.

‘위치’ 자체라기 보다는 길이다. 꽃길에 도달하는 길이 문제가 너무 많아서, 쉽게 가기는 어렵다. 반대편에서 직선으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안전하게 이어진 인도 자체가 없어 위험하고 시끄럽다. 주차공간은 편하지만 우리집에서 내 차를 갖고 가기엔 실제 거리보다 유턴 유턴 다시 돌아올때 유턴 유턴…
가장 아쉬운 점이다. 갈 때마다 길만 좀 더 좋아지면 좋겠다는 바램과 아쉬움이 있다.

꽃길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콩빵에 딸기스무디 마시면서 찬바람 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