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드는 것

이어폰이 없다.

어떤 음악이 듣고 싶어서 양치하고 자리에 앉았으나 이어폰이 없다. 며칠동안 몸이 계속 아팠던 관계로 가방조차도 귀찮아서 집에 두고 출근했으니, 이어폰이 없다.
얼마 전 취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취향에 대한 글을 찾아 읽고 책도 조금 보면서 언젠가 내 아이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는 꼭 취향에 대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하고 싶은 것, 네가 좋아하는 색깔, 향기와 운동과 글 같은 것들이 너를 만드는 거라고. 똑똑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밖에 얘기해줄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해 줘야지.

지금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나,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나는 이제 한참이나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됐다.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제 그 것들은 내 안에서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새로운 음반이 나와도 더는 흥미롭지 않고 감동도 느낄 수 없다. 게임은 사도 플레이하지 않는다. 조금 괜찮아진 상태에서도 멍하다. 뭘 하고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코딩? 만들고 싶은 것도 없다.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 가서 이걸 한다고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 요즘 조금 아파서 더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아파서인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성욕도 내 안엔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욕이 있고, 그래서 왠지 모를 젊음의 자부심이 있고, 그래서 세상 모든 여자들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 머리를 꾸미거나 옷에도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원래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가?

친구도 없다.

친구를 사귀는 데 능숙하지 못해서 항상 상처를 주거나 받았으니 친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포기하는 게 편했었다. 이것도 나이를 먹고 알았다. 내 인생에서 친구 한 명을 지울때마다 그 시절의 내 모습 일부가 같이 지워진다는 것을. 이제는 예전같지는 않으니 누구든 소중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이제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예전같지 않다. 그런 나를 이용하려 하거나, 혹은 이제 각자의 세상이 바쁘기 때문에 예전같이는 사람을 대할 수 없다. 서로가. 나부터도 같이 있는 사람부터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짬뽕은 있다.

그저께 밤 우연히 갑자기 짬뽕이 너무 먹고 싶어서 어제 점심에는 짬뽕을 먹었다. 원했던 맛이었고 아픈 와중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본인의 취향으로 사람이 만들어지는 거라면, 어쩌면 지금 나는 짬뽕 100%로 이루어진 몸일지도 모른다. 만나려면 만날 수 있고, 최근 처음으로 의지대로 원하여 만난 것.

뭔 개소리를 썼는지 모르겠다.

그냥 요즘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궁금하다. 약인가?

+ 짬뽕 3일차.